[문화산책] 평전의 품격…김윤식과 인천, 각주 달기(2023.12. 15일자. 인천일보)
경남 김해 진영 출신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돌아가신 지 5년째다. 선생은 한국 근대문학을 머리가 아니라 발로 뛰어다니면서 자료들을 찾아 철저한 고증을 통해 입증한 한국근대문학사가였다.
김윤식 선생의 글쓰기는 평전에 육박하는 글쓰기에 집중했다. <이광수와 그의 시대>는 평전 형식을 빌려, 독특한 문예비평을 만들어낸 저서로서 김윤식과 이 책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다. 선생은 친일문학인으로 낙인 찍혀 제대로 접근조차 못 한 문인 이광수를 실증적으로 연구해 한국 근대문학사에 우뚝 세웠다. 천애의 고아이자 문제아였던 이광수가 근대 시기에 가졌던 문제의식과 고민을 이광수가 남긴 기록과 작품, 숨겨져 있던 사람 관계들을 발로 뛰어 찾아내어, 이를 기초로 이광수의 삶과 문학을 새롭게 탄생시켰다.
김윤식 선생의 평전 글쓰기와 문예비평 글쓰기는 후대 한국 근대문학 연구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자료에 철저히 근거하고, 그 자료의 출처를 정확하게 밝히는 글쓰기의 윤리성을 갖추는 것이 연구자의 자세라는 것을 후대 연구자들에게 교훈으로 주었다.
연구자였던 필자도 김윤식 선생의 글 기풍을 본받아 카프 서기장 임화의 부인 지하련의 생애와 마산 산호동 거주지를 자료 고증으로 찾아내었다. 의열단장 김원봉이 태어난 곳이 밀양 내이동 901번지임을 제적등본 등을 찾아내어 처음 밝혀냈고 김원봉 생가터 자리에 지금은 의열단기념관이 세워지는 데도 기여했다. 발로 쓰는 글쓰기가 연구자가 지녀야 할 덕목이라는 선생의 교훈에 힘입은 바 컸다. 지하련의 마산 산호리 거주지, 약산 김원봉의 밀양 생가터를 밝혀낸 이가 누군지는 각주 형식이라도 빌어서 밝혀내는 것이 연구자의 기본적인 덕목인데도 이를 밝히지 않는 분류들이 있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필자는 인천과 김윤식 선생님과 인연이 있는 자료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인천과 김윤식 선생의 인연은 선생의 서울대 사범대학 동기생이었던 신상철 교수의 수필에서 찾을 수 있다. 신 교수가 군 복무 중에 휴가를 나와 인천에서 교편생활을 하는 김윤식을 찾아, 인천 자유공원에 올라가 놀고, 드럼통을 거꾸로 박은 선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대목이 나온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멋진 나체화를 보여주마”는 김윤식의 말에 이끌려 ‘배다리’에 있는 하숙방에 들렀는데, 하숙방 사방면에 사전을 찢어서 빨라 놓은 풍경에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인천에 사는 필자도 김윤식 선생과 인천과의 관계를 살펴볼 기회가 주어졌다. 김윤식 선생이 옛 인천 남구청 자리에 있었던 인천교대에서 교수(1963.3.1.~1965.9.3)로 활동한 기록을 <경인교대 50년사>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선생은 인천교대에서 근무하면서 인천고에서도 문예부를 지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몇 년 전에 인천고에 방문해 교사사령부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1960년대 초 교사 사령부 존재 여부를 확인 불가하다는 학교 담당자의 말을 듣고 발길을 돌린 적이 있다. 인천고에서 문예부 교사로서 활동한 공식 기록도 확인하게 된다면 김윤식 선생이 인천 문학에도 기여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김윤식 선생님의 배다리 하숙한 집 위치도 고증하고 싶다. 이 글을 통해서 1963년에서 1966년 무렵 김윤식 선생으로부터 배운 인천고 문예부 학생께 기억을 더듬어 보기 요청한다.
/이장열 애스컴시티뮤직아트페어 대표∙문학박사
출처 : 인천일보(https://ww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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